솔직한 이야기/내 이야기

'열심히 살기' 와 교통사고의 연관관계(Feat.허리 디스크)

제이 스치는 바람에 2020. 11. 10.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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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가 났을 때는 내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안전한 직장인 바로 공무원에 재직 중일 때이다.

심각하게 열심히 일할 때이다. 나는 대한민국 9급 공무원이다. 아니 9급공무원이었다. 진급했으니까 8급이었나?

뭐, 여튼 민원을 해결하려고 내차를 가지고 가려다가 키를 안가져와서 그냥 관용차로 민원을 해결하러 타지역까지 다녀왔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 몇십번이고 왔다가던 길을 돌아오는 길에 사고가 나고 말았다.

 

당시 운전 습관을 생각해보면 사고가 날 때쯤이었다. 당시 나이가 29살인가? 그 당시 앞뒤전후로 2년간 사고가 진짜 많이 났는데, 그때 가장 크게 다쳤던 것 같다. 조금 험하게 운전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그 사고 이후로 전부 고쳐졌다. 커브길에 수막현상으로 핸들 및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았고 나는 소나무를 들이받아 소나무 하나는 완전히 부러져서 30미터 앞에 날라다니고, 관용차는 연기가 나면서 무슨 액체가 질질 흐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몸이 아픈지도 모르게 놀라서 팀장에게 사고를 보고하고 차를 수리 맡기고 병원으로 진료를 응급으로 보고 온다. 응급실 밖에 열지 않아서 응급실을 간거지, 외관상 특별히 피를 흘리지도 않았고 멀쩡했다. 외관상으로는.

 

이후 하루 두시간씩 병가를 쓰면서 물리치료를 받았다. 허리가 쌔하게 아픈 느낌은 한달이 넘어가도록 났지를 않았다. 의사는 말했다. 그것도 대에충. 교통사고 나서 한달은 뻐근할 수가 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질 것이고, 물리치료 받고 경과를 지켜보자고 했다(뻔한 의사들의 레파토리, 아주 진저아주 진절머리가 난다).

 

이후 나의 요통은 계속 되었다. 근거없는 민간요법부터 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제일 뻘짓거리 한 것은 바로 한의원에서 침 맞고 부황 뜬 것(개인적인 의견임). 조직은 사고의 책임만 물었고 책임을 지려하지 않았다. 조직의 톱니바퀴가 헐거워 지자 내다 버릴 생각부터 하는 것이 대한민국 공무원 사회의 조직인 것이다.

 

조직에 대한 분노는 이때부터 들끓기 시작했다.

 

 

 

 

 

요통이 오면서 제일 불편했던 것은 바로 뛰기와 걷기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할 수는 있는데 다음날 허리가 쑤셔서 견딜 수가 없다. 그렇게 1년 3개월을 보냈다. 2명의 여자친구도 보냈다. 그리고 조직에 대한 분노와 염증으로 이직을 준비할 겸 휴직을 하게 된다. 물론 허리아픈 것을 치료하는 것이 목표였다.

 


휴직의 목적은 두가지

1. 허리 디스크 치료

2. 퇴사 및 이직 준비


 

허리가 아프면서 가장 먼저든 생각은 이렇게 살거면 왜사냐는 생각이었다. 운동은 커녕 오래 걷기만 해도 허리가 욱신욱신거리고 아픈 것은 잘 낫지를 않는다. 지속적으로 병원에서 물리치료와 주사치료는 꾸준히 받아왔다. 뭐, 허리라는 것이 쉽게 낫지를 않는다. 그렇게 허리가 고장난 채로 살아오다가. 우연히 허리와 관련된 책을 읽었고, 그 책에 나오는 의사를 따라 서울 서부까지 찾아간다. 그리고 마치 연예인을 만나듯 유명의사에게 진찰을 받고 MRI를 처음 찍어본다. 여태까지는 CT만 찍어서 까막눈인 나는 제대로 봐도 잘 모르는 상태였다. 돈은 조금 들지만 내 몸의 상태를 보는 것은 중요했다.

 

 

 

 

 

 

의사에게 들었던 말은 생각했던 말과 달랐다. 내 생각보다 상태가 나쁘지 않았다. 근데, 나의 고통은 여전했다. 여전히 허리의 통증은 나의 삶을 짖눌러왔다. 이전처럼 나의 삶을 살 수 없다는 생각에 억울하고 비통한 느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마치 다리가 잘린 육상선수럼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늘 나를 지배했다.

 

의사의 소견은 디스크가 튀어나온 것은 맞지만 그정도가 심한 정도가 아니라고 했다. 지금와서 보면 조금은 건강염려증을 가졌던 것 같다. 정상이었던 삶이 100이었다면, 다치고 난 나의 삶이 100이 아니라는 생각에 다시 완벽한 100의 삶을 꿈꿨다. 그래도 운동하지 않고 무리만 하지 않으면 일상생활은 무리가 없었다. 조금만 무리를 하면 디스크가 튀어나와 허리신경을 누르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사고 후 왼쪽다리가 아주 살짝 저린듯한 느낌이 가만히 멍하고 있으면 들었다. 그것이 사실 진짜 디스크 환자에게는 별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더 큰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89%의 상태를 100으로 돌려놓겠다고 다시 그 유명한 의사를 찾아갔다. 그리고 무리를 하면서 무슨 마법의 비약같은 시술을 했다. 의사는 니 고통을 완전히 사라지게 해줄 것처럼 달콤한 말로 나를 유혹했다. 정작 의사는 7분만에 끝나는 수술을 수술일정이 바쁘지만 어렵게 수술을 잡았다고 생색을 내며 나는 당일에 입원을 했었다.

 

정작 시술은 체감으로 5분도 안되서 끝났고, 이후 이전과는 정도가 다른 저림이 양쪽다리에 전해져왔다. 의료진들은 시술당시 신경에 자극이 되었다면서 충분히 그럴 수 있다면서 나를 위로했다. 그러나 그 저림은 2년이 지나도록 달라지지 않았다. 지금에 와서는 익숙해진 것인지 덜해진 것인지 알 수가 없지만 확실히 신경이 안쓰이는 것은 맞다.

 

진짜로 의사를 죽여버리고 싶었다. 사람 몸가지고 장난치는 이새끼들이 진짜로 의사란 말인가? 너무나 화가 났지만 의료분쟁을 낼 수도 없었고, 그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것도 의사들을 학술적으로 설득을 할 수도 없었다. 나는 그냥 광활한 사막에 작은 먼지와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사라져도 아무도 모를 그러나 방구석에서 홀로 쓸쓸히 아파할 바로 그런 먼지 같은 생명체라는 생각이 나를 잠식해갔다.

 

저림을 없애기 위해 꽤나 노력을 했지만 허리와 신경 쪽은 꽤나 낫기가 힘든 장르였다. 허리 쪽은 통증이 없어졌는데 저림이 계속적으로 남아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줄 알았다. 물론 시간이 지난 후 나의 상태는 좋아졌다. 그런데 이에는 많은 비하인드 스토리가 들어있다. 여튼, 저림을 낫게 하기 위해 먹은 약 신경쪽 약들이 부작용이 계속 나를 힘들게 했다. 바로 탈모와 식욕증가로 인한 체중증가였다.

 

여튼 허리통증이 시작된 순간부터 나는 어쩌면 늘 최후를 생각했던 것 같다. 허리가 아픈 삶은 정신은 말짱한데 몸은 움직일 수 없는 식물인간처럼 나에게 늘 끔찍한 순간들뿐이었다. 그때부터 내 물건들을 정리하고 내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이제는 후회없는 인생을 살기 위해 늘 노력했다. 이직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동시에 언제 내가 내 삶을 끝내도 후회가 없도록 나의 삶을 만들고 있었다. 너무나 아이러니하다.

 

마음 속에 큰 짐이 나를 늘 짖눌렀다. 잘 때도 공부를 할 때도 커피를 먹을 때도. 날개를 잃은 새와 같이 나는 제 역할을 못하는 그런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을 24시간 느끼면서 생활해 왔었다. 그럼에도 나는 공무원을 준비했던 것처럼 똑같이 이직준비를 했고 결국엔 이직에 성공을 한다. 명실상부 공기업에 합격을 하게 된다.

 

사회적으로는 공기업에 이직을 성공을 하면서 위상이 높아졌다고 해야하나, 그러나 여전히 나를 짖누르고 있는 그 느낌이 나를 너무나 힘들게 했다. 취할 때면 아주 마음 속 깊은 우울함이 표면 밖으로 올라와 나를 괴롭혔다.

 

그러나 진짜 어둠이 나를 삼킨 것은 이때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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