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아름다움/우리말

자화상 - 윤동주

제이 스치는 바람에 2020. 11. 11.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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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라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가 들여다 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追憶)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中-

 

 

수능을 볼 때도 그렇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때도 그렇고 윤동주 시인의 시는 참으로 여린 것 같다. 부끄러움의 시인이라고 불리는 윤동주는 일제강점기에 스스로의 방법으로 일본과 싸웠다. 그리고 스스로와도 싸웠다. 창씨개명을 하고 스스로가 미워서 그렇게 본인을 몰아세웠단다. 그 부끄러움에 시를 쓴 것이 바로 '거울이라는 시' 스스로가 얼마나 부끄러웠을까? 그러나 진정 부끄러워해야할 사람들은 정작 너무나 당당하게 그 시절을 살아갔고, 지금도 그 후손들은 부끄러운 줄 모르고 당당하게 그 이름을 앞에 내걸고 있다.

 

과거를 회상하면서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일기를 쓰면서 갑자기 이 시가 떠올랐다. 너무나도 여렸던 사람, 그러나 강직했던 사람. 그의 시집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의 시는 순수하고 여리다. 그러나 스스로의 대한 성찰을 담은 시를 보면 나도 모르게 맘이 녹는다.

 

그가 세상을 떠난지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러나 시라는 매개체로 나와 그가 서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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