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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일본인 여자친구 이야기

제이 스치는 바람에 2023. 9. 7.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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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갓스시녀(본래 비하하는 의미가 아님, 좋은 의미임)에 대한 환상을 가진 이들과 국제 연애에 대해 궁금증을 가진 모든 이들에게 바친다(산산히 박살내주마!!!)

​1. 

 

나는 원래 일본에 대해서 관대하다. 어렸을 때부터 일본 매체로부터 많이 노출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어렸을 때부터 본 원피스를 아직도 3번이나 보고 있고, 명탐정 코난과 각종 애니메이션을 모두 보고, 영화와 드라마도 웬만한 것은 모두  봤기 때문이다. 덕분에 일본어의 기본기는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일본어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된 것은 바로, 내가 타국에 갔을 때였다.

일본이 아닌 국가에 갔는데 웬 일본어?????? 그것은 내가 다니는 회사의 직원의 95%가 일본팀 직원이었다. 이건 정말 횡재였다고 생각한다. 보통은 그 로컬들이 많다고 한다. 그 나라의 로컬이라고 하면 말레이+화교 정도이다. 딱히 종교적 편견은 없다만, 이야기 조금만 해보면 현지 애들은 조금 답답하다. 그나마 화교애들이 나은데, 아무리 로컬이라도 그 특유의 중화는 못 벗어나는 듯한 느낌​

그런데 늘 좋아했던 일본인(日本人,이제는 이유없이 좋아함이 그냥 좋아함으로 바꿨다)들이 내가 회사에 가면 그냥 있다는 것은 음, 초 럭키 아님니까? 그리고 뭐 친구가 되는 것이 뭐 어렵지도 않고, 나니까.  처음에는 리짱라는 친구와 친해졌다. 아직 숙소가 없을 때 회사에서 주는 호텔에서 지낼 때,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다. 나는 리짱를 처음 보자마자 평생 친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리짱는 나에게 친구라는 명목으로 꽤 나에게 자신의 없는 매력을 어필한다. 미안한다. 내가 죽었다가 80번 살아나도 너랑은 못 사귄다. 소 쏘리

' 리짱아, 널 귀엽다고 하는 남자를 만나렴. '​

 회사의 일본인들과 하나 둘 씩 친해져가는 중이었다. 

회사에서는 새로운 기수가 신입사원으로 들어와 계속 교육을 받고 있었다. 일본팀이랑 친하니까, 언제 어떤 기수가 들어오는 지도 훤히 알고 있었다. 그중에 한 여자가 내 맘에 내려와 꽂혔다. 금발을 하고, 눈이 컷으며, 옷은 화려하고 종종 노출이 있는 옷을 입었다. 약간, 갸루의 느낌(ギャルポイ)이 강했다.

 맘에 들었으면, 어떻하지? 가져야지. 맘에 들었다. 그녀가 맘에 들었다. 맘에 든다고 느끼고 바로 말을 걸지는 않았고, 한 1주-2주는 그냥 지나가면서 휴게실에서 그냥 지켜보았다. 그리고나서 늘 그렇듯이 휴게실에서 나는 모든 일이 끝나고 그냥 일본어 공부를 하고 있었다. 참고로 내 일본어 노트는 일본인 여성에게 말을 걸 수 있는 최적의 아이템이다. 그렇게 공부하고 있는데, 놀랍게도 우연히 내가 맘에 들어했던 그녀가 내 옆에 앉았다.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기회가 왔는데 못잡는 것은 그냥 병신이다. 

바로 말을 걸었다. 기억을 회상해 본다.

あの、すみません。最近日本語を勉強しています。

質問があるのによかったら教えてくれませんか?

(아, 죄송한데요, 지금 일본어 공부를 하고 있는데요.

 괜찮다면 질문이 있는데 답해주실 수 있나요?)

그렇게 도입부는 끝났다. 그리고 나서 개인 신상을 캐기 시작했다. 이름은 마루(가명)라고 했다. 그리고 빅뱅의 大팬이라고 했다. 그리고 안타까운 빅뱅의 멤버 소식을 전하고 아쉽게 그녀의 쉬는 시간이 끝나버렸다. 막바로 그녀에게 라인 연락처를 얻는다. 언제 또 볼지 아나? 싶어서, 그랬다.

일본친구들과 가깝게 지냈지만, 그렇게 인사를 나누었다고 해서 절대로 다음에 봐도 그렇게 친한 척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녀는 조금 달랐다. 내가 쉬고 있으면 지나가다가도 먼저 내 옆에 앉아서 아는 척을 했다. 그런 적극적인 태도 또한 당시에는 나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몇번을 나에게 다가왔다. 자주 얼굴을 보면서 조금 가까워 졌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주말에 커피를 먹자면서 데이트 신청을 했다. 아주 좋아라 하면서 오케이를 말한다. 

 

2.

 

주말에 시내에서 오후 4시에 만나기로 한다. 모니? 기다리고 있는데, 지금 ㅊ일어나셨단다. 물론 당시에는 전혀 화나지 않았다. 왜? 좋아하니까.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다고 생각했으니까. 화나지 않았다. 그러나 첫 약속을 늦는 그 사람에 대해서 나는 뭐라고 했어야 했을까? 적어도 그녀가 어떤 캐릭터인지 좀더 들여봤어야 했다. 나의 불찰에 내 귀싸다구를 내가 때리고 싶네. 

 

헐레벌떡 뛰어온다. 뭐 그래도 뛰어오는 성의에 그냥 날도 덥고 가까운 카페로 들어간다. 그리고 커피를 먹는다. 케이크도 시킨다. 그녀랑 이런 저런 대화를 재밌게 나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녀에 대한 호감을 표시한다. 나는 시간이 아까운 사람이라 이젠 돌려말하는거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난 물었다. 남자친구가 있는지? 그녀의 대답은 없단다. 그 대답에 나는 말했다.

えええ~、そんなに可愛いけどなぜ彼氏いないの?-ㅅㅂ...
(에에에~, 이렇게 예쁜데 왜 남자친구가 없어?) 

이 멘트를 던지면서, '크~~됐어'라고 혼자 지랄했다. 이 말을 하니, 같은 대사로 나에게 공격이 들어왔다. 그럼 왜 나 쿤은 여친이 없냐고 물었다. 분위기는 좋았다. 그녀와 계속 데이트를 하고 싶었다. 그렇게 두시간을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재밌었다. 처음이었고, 서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는  상황이니 서로가 나쁠 것이 없었다. 저녁에 약속이 있단다. 보통은 저녁에 약속을 안잡지 않나, 이렇게 오후에 약속이 있으면? 지가 쳐늦게 나오고 나서 저녁에 나  그녕 혼자 보내야 되네? 좀 서운했지만, 좋은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나는 썸을 탄다고 생각했는데, 그녀와 종종 연락을 하면서 먼저 연락이 오지도 않고, 답장도 조금 답답하게 와서 나에게 관심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에 초조하기도 했다. 나의 급한 성격이 언젠간 나를 파멸로 이끌 것이다. 아마도 이미 파멸을 경험했을 수도 있다. 마루를 만나면서.......

그렇게 어정쩡한 관계를 지속하다가, 우연히 k군의 집에서 파티가 열린다면서 나에게 초대를 하는 것이다. 번뜩였던 생각이 있다. 마루짱과 마루짱과 같이 사는 친구(하루짱)를 데리고 가면 재밌겠다고 생각했다. 이 둘을 데려가도 되는지 물었다. K와 T는 좋다고 했다. T는 나에게 여자 전문가냐면서 일어나서 인사를 한다. ㅄ색히. T의 이름을 기억해두면 좋다. 나중에 중요한 인물로 등장한다. 머리는 예수님처럼 기른 친구인데, 좋은 놈인줄 알았다. 처음에는. 여튼. 파티에 초대받고 마루짱과 하루짱을 데리고 파티에 간다.

마루짱이 술을 좋아한다고 말은 들었지만, 거의 소주 1.5페트를 거의 혼자 다 마셨다. 그런데도 막 맛탱이가 가거나 그러지도 않았다. 그때 좀 위험하다고 생각했어야 했을까? 술 좋아하는 게 죄는 아니니까. 그걸 절제 못하는 인간이 죄지. 그렇게 재밌게 지내는 중에. 나는 T과 마루짱이 재밌게 농담을 주고 받으면서 기묘한 기류를 느낀다. 그걸 감지하고 그 둘이 재밌게 지내는 자리에 낀다. 졸라 방해하고 싶은데, 그 정도로 일본어를 잘 하지 못해서 무슨 말 하는 지 못알아듣는다. 갑자기 불현듯 스치는 생각이 있다. 서로 재밌자고 파티에 왔는데, 내가 좋아하는 여자를 친구한테 뺐기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니 급 빡이 돌았다. 그래서 바로 실행에 옮긴다.

마루짱에게 바람을 쐐러 가자면서 잠깐 풀장으로 나간다. 풀장에는 이미 새벽 4시라 들어갈 수는 없고 순찰도는 경비만 있을 뿐이었다. 분위기를 읽었는지 알아서 짜져주었다. 나는 잠깐 의자에 앉아서 할 말이 있다면서 그녀에게 말한다. 

 나 쿤: 言いたいことがある。僕は마루ちゃんが好きだよ。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 나는 마루짱이 좋아)

 

마루짱 : ええええ?本当?嬉い。じゃあ、どうする?
(에에에에~,정말 기뻐. 그럼 어떻게 해??-좋아하는데 ㅅㅂ어쩌라고??)

 

나 쿤 : つきあってくれ
(사궈줘~)

마루짱 : ありがとう、これからよろしくお願いします.
[고마워, (고개를 숙이면서) 지금부터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일단, 서로 주고받는 대사가 기업의 인수합병같다는 생각을 한다. 나중에야 이런 대사가 본래 일본에서 고백할 때 자주 쓰이는 대사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바로 [테라하] 라는 일본 예능을 보면서 그런 장면들이 자주 나왔다. 서로 좋아한다고 말하는데, 갑자기 인사하면서 지금부터 잘 부탁드린다느니, 낯설었지만 그래도 정말 나에게 일본여자친구가 생겼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여기서 또 든 생각, 얘는 참 모든 게 쉽다. 

서로 극적인 합의(?)을 마치고 함께 다시 파티 장소로 올라간다. 우리 둘이 사라진 것을 알고 있던 친구들이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고 나는 얼버무린다. 아마도 나와 마루짱의 기묘한 분위기를 읽었을 것이다. 그렇게 아침까지 계속된 파티에서는 피곤해서 고백 후 2시간 뒤 아침 6시에 집으로 돌아간다. 

정확히 다음날, 회사의 모든 이들이 나와 마루짱이 사귀는 것을 전부 안다. 물론, 일본팀에 한해서이다. 한국팀은 뭐 다른 나라랑 소통할 생각이 없는 애들이라 모르고 뭐 그랬다. 나는 일본여자와 사귀는 한국남자로 유명해졌다. 일본애들도 한국사람들만큼 남얘기에 관심이 많다. 가십을 너무 좋아한다. 앞에서 얌전히 뒤에서 호박씨를 많이 깐(?)다. 다만 앞에서 오지랖을 안피울뿐 사람 씹는 것은 아주 좋아하는 또다른 민족이었다. 코아이요...​

그렇게 나와 그녀의 달콤한 핑크빛 사랑이 시작되는 듯했다. 

​3. 

 

사귄지 얼마 안된 단 2주 정도 동안은 사이도 좋았고, 서로 조심하기도 해서 크게 다툴일도 없었다. 그렇게 소소한 데이트를 매일 하던 중, 나는 늘 그렇듯이 급격한 텐션의 하강을 느낀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사귀기 전에 늘 기다렸던 그녀의 연락은 사귀고 난 뒤 조금은 귀찮았다. 매일 보던 예능을 보는 데에 집중하고 라인을 확인을 잘 안하게 되었다. 

마침, 나도 이사를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K의 집을 가보니 그쪽 타운이 매우 좋았다. 몰도 바로 앞에 있고, 시설도 좋고 무엇보다 나에게 안심을 주는 안식의 공간 풀장이 가장 맘에 들었던 그 콘도로 이사를 희망했다. 그 이사는 그녀가 허락을 한다면 함께 살기로 할 생각이었다. 그녀에게 물었다. "나는 이사를 해야하는데, 너도 하루짱의 집에서 식객으로 살고 있지 않느냐? 그러면 우리 함께 사는 것이 어떨까?" 

퍽킹, 잘못된 판단데스네


그녀의 대답은 뭐 망설이지도 않는다. 이제부터 예스걸(Yesgirl)이라고 부를까???? 예스이다. 이왕이면 월초에 방을 빼야하기 때문에 명절 전에 계약할 수 있게 작업을 진행했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갈등이 시작된다. 서로의 본모습이 보이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이기적인 여인을 본 적이 없다. 나는 급한 마음에(본래 일하는 스타일이 다부지기도 하다) 매물을 10개 정도 쭈욱 뽑아서 부동산업자에게 모두 연락을 해서 매물을 볼 약속을 잡는다. 그리고 조건과 비용등을 틈나는 대로 조사한다. 그런데 이 마루짱은 아무것도 안한다. 그리고는 방 쇼핑 때나 와서는 불평을 늘어놓는다. 나는 맘에 드는 방을 모두 퇴짜를 놨다. 둘이 사는데, 필요한 시설이 다 있으면 그만이고, 특별히 하자가 없는 것 같아서 나는 오케이였는데, 방이 이쁘지 않다면서 다 퇴짜를 놨다. 여기서 살짝 스팀이 올라온다. 

서로 갓 외국에 나왔다면 돈을 아끼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데, 이 여자는 화려한 방을 살고 싶다면서 거의 60-70만원 정도의 월세를 내는 곳을 계약하자고 한다. 솔직히 그렇게 맘에 들지 않았다. 물론 방은 이뻤다. 그런데 그 이유는 납득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화려한 방은 내가 정작 일하는 날 마루짱 혼자 부동산업자와 본 방이다. 너무 열받는다. 결국 일은 내가 다하고 이득은 자기만본다는 것 아닌가. 뭐 더 싸우기도 싫고 이미 방을 구하면서 에너지를 모두 소모했다. 과민했던 시기이다.

나와 마루짱은 친구의 파티에서 놀고 있었다. 그때, 계약서를  쓰자면서 부동산 업자는 나와 마루짱이 있는 곳으로 왔다. 마루는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오겠다면서 거기에 내 이름을 쓰고 온다. 잉????뭐지? 뭐 그때는 앞으로 우리가 헤어질 것이라는 것을 1도 예측하지 못했기에 그냥 오케이를 한다. 이런 불찰이 앞으로 얼마나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킬지 알지 못했다.

그렇게 잔금까지 치르고, 이사 날짜가 다가왔다. 나는 휴가날이었고, 마루짱은 근무날이었다. 이사를 마치고 멍때리고 있는데, K가 시내에 있는데 놀러가자고 한다. T도 같이 있다고 했다. 심심해서 그냥 도심으로 지하철 타고 이동한다. 시내의 큰 백화점으로 향한다. 그들은 쇼핑을 했고, 나는 같이 구경했다. 나중에 그 모임은 저녁까지 이어졌고, 늦게까지 놀게 된다. 이미 자정이 넘은 시각, 마루짱은 메신저로 이미 화난듯해서 더 말을 안했다. 그래서 혹시 화났는지 집에 가서 물었는데 눈도 안마주친다. 그런데 입으로는 괜찮다고 말한다. ㅈㄴ답답하다.

불만이 있으면 있다고 말하고, 기분이 나쁘면 말하고, 사람간의 예의를 지키는 것이 큰 것이 아니다. 비겁하게 입으로는 아니라고 말하면서 행동으로 티나게 하지 말고. 입으로는 괜찮다고 말하니, 그렇게 이해했다. 그녀를 안아주려고 했는데, 스킨십을 피한다. 그냥 피곤하가 보다 했다. 그런데 그때 화가 났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 화난 것은 거의 헤어질 때까지 안풀린 것 같다. 그때 어긋난 우리의 사이는 심하게 삐걱거렸다.

이미 이사를 하기 전부터 짜증이 나있던 내 마음을 읽었을까? 사람이라면 읽었겠지. 차가워진 나의 태도를 눈치를 챘을 것이다. 이사하면서 까탈스럽게 구는 그녀를 보니 아주 짜증이 밀려왔다. 이사는 하자고 하고 이쁜 방을 찾아서 헤매는데 정작 아무것도 하지 아지 않는 그 염병할 꼬라지를 보고 있자니, 끓어오르는 화를 몇 번이고 참았다. 

이사온 첫날부터 서로 감정이 상한다. 그리고 그 상한 감정은 점점 더 깊어진다. 하루는 장을 보러 갔다. 내가 실수로 지갑을 놓고 왔다. 그런데, 그녀는 괜찮다고 한다. 장을 보다가, 옥수수통조림을 사자고 했다. 한화로 한 700원 정도 한다. 안된단다. 귀를 의심했다. 뭐라고??ㅆ ㅑ ㅇ??? 그리고 하는 말이 더 가관이다. 내가 지갑을 가지고 오지 않았는데, 그것은 실수니까 괜찮지만, 그때 나에게 어떤 것을 사라마라 요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입을 미싱해버릴까? 생각했다. 이게 말이야? 방구야? 머더퍼킹...​

나는 그녀에게 꽃도 사다 바치고, 선물, 밥도 사고 술도 사고 했다. 물론 대가를 바라고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나에게 그 옥수수통조림 하나 못 사주겠다고 세상 냉정하게 군다. 진절머리가 났다. 전형적인 '내로남불'의 캐릭터였다. 더치패이를 뜻하는 일본어 와리카리(割り勘)을 자주 했는데, 그녀의 와리카리, 기적의 논리는 이랬다. 이곳은 특히 술이 비싸다. 나는 술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장을 볼 때 거의 술값이 절반이 나오는데 장을 보면 술을 포함한 장본거리를 전부 와리깡한다. 나는 먹지도 않는 술을 늘 내가 와리깡 한다. 내가 째째하게 이런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상대방이 먼저 피도 눈물도 없이 나오니까 하는 소리임을 인지해주길 바란다. 이 기적의 논리를 펼치면서 정작 내가 실수로 지갑을 안가지고 와서 조그만 옥수수통조림 하나 산다고 하는데, 그걸 안된다고 하니, 잔정이 싹 떨어졌다. 그리고 장을 보고 와서는 그 장본 것들의 절반을 주고 말했다. 

"앞으로 우리 필요한 것은 각자 사자"

그때부터인가, 각방을 쓴것은 그때부터인 듯하다. 베드룸이 있고, 거실에 소파는 아주 좋은 소파베드였다. 그리고 나는 티비가 없으면 못살기에 거실을 택했다. 그녀가 불을 키고 자는 것, 에어컨을 아주 춥게 켜놓고 자는 것 모두가 다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였다. 무엇보다 가장 안좋은 습관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바로 그녀는 청소는 하지 않았다. 방이며, 자기 공간이며 절대 청소를 하지 않았다. 오로지 치우고 닦는 것이라고는 자기 몸뚱아리랑 자기가 입은 옷가지뿐이었다. 다시 생각하니까 개빡치네...​

처음 나와 마루짱이 밖에서 만난 날, 왜 늦었는지 눈에 그려졌다. 늦잠을 잤을 것이다. 그러나 제 시간에 나올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자기 치장하는 데에 완벽을 기하는 그녀의 습관에 아마 꾸미다가 늦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생전 자기 공간을 치울줄은 모르는데, 자기 옷은 하루에 2-3번씩 세탁을 한다. 이것이 생각보다 스트레스였다. 하루 종일 세탁기가 돌아간다. 그리고 꼭 씻는 것도 새벽 1-2시에 씻는다. 이건 자기 혼자 사는지 아나? 뭐 하자는 거야? 그리고 헤어드라이기로 머리를 싸악 말리고 자는 센스는 화룡점정. 속에서 천불이 난다.

​그렇게 매일 술을 처마시고 새벽 1-2시에 주무시니, 아침에 일찍 일어날 수가 있나? 알람을 오분 단위로 끄면서 쳐주무신다. 예민한 나는 바로 그 알람 덕분에 깼다. 그리고 한숨도 자지 못했다. 내가 오프인 날에도 물론이다. 생전 남에 대한 배려라고는 없는 녀인이었다. 와! 진짜로 끝판왕이었다. 이렇게 이기적인 사람을 처음 봤다. 그렇게 가까스로 출근을 하면서 화장하고 옷을 갈아입고 자신을 치장하는 모습을 보니 이꼴을 다음달에도 보면 내가 먼저 열불이 터져서 죽겠다는 생각을 했다. ​

나는 스트레스로 점점 살이 빠지기 시작했다. 회사에 가도 그녀가 있었고, 집에 와도 그녀가 있었다. 도망칠 곳이 없었다. 긴 고민 끝에 나는 말했다. 

"보증금 줄테니, 내 집에서 나가줘, Plz"

 

4. 

 

우리의 예스걸은 이번에도 노를 말하지 않았다. 예스를 말했다. 게스테린 광고처럼 시원했다. 가장 이 여자랑 사귀면서 예뻐보였던 순간이다. 내 집에서 나가준다니. 비록 다음달 1일자로 나간다지만, 됐다. 밀린 숙제를 한 것처럼 속이 시원했다. 그러나 2주가 남았다. 그 기간만 잘 버텨보자. 여기는 내 집이다. 알갔니?


결정적으로 내가 그 아이를 내보내야겠다고 생각했던 사건이 있다. 그녀와 사이가 한창 안좋을 때였다. 우연히 같은 친구에게서 같은 파티에 초대되었다. 그러나 서로 우리는 이야기를 하지 않을 때라 서로가 오는 지도 모르고 있었다. 같은 공간에서 만났다. 그런데 눈도 안마주친다. 살짝 빡이 친다. 그래도 이번 연애를 잘 해쳐나가는 것이 내가 이번 인생에서 해결해야할 번뇌라고 생각했다. 이번 연애를 잘 해내는 것이 내 인성과 인간의 성장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먼저 손을 내밀어 보기로 한다. 이렇게 사람이 덜된 존재라고는 생각을 못했을 때였다.

그녀와 이야기할 기회를 계속 노렸으나 계속 나를 피했다. 이 비겁한 인간아. 왜 이러냐? 와중에 그 사정을 모르는 다른 친구들은 우리가 사귀는 것을 알고 얼레리 꼴레리 하면서 비슷한 농담을 던진다. 난감하다. 진상을 말해주고 싶다. 결국 이야기할 기회를 만들어서 대놓고 밖으로 나오라고 했다. 그리고 다이렉트로 말한다. 나에게 요즘 화난 것이 있는지 아니면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늘 문제를 직시하는 것을 회피하던 여자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삿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이사 첫날 나에게 많이 실망하였단다. 그 부분은 나도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렇게 늦을 줄은 몰랐지만, 그래도 이사 첫날인데 서로 로맨틱하게 보낼 수도 있었는데 내가 조금 기민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서는 미안했기에 사과했다. 그런데 그 이후로 몇 가지 더 말했다. 이사가기 전에 내 집에 놀러왔을 때 내가 지 가방을 훔쳐봤다고 했다(솔직히 그냥 열려있어서 본거고 뒤진 것도 아니었다. 꼭 어디서 뒤에 캥기는 것 있는 애들이 이렇게 별거 아닌 것에 민감하게 군다). 이게 문제가 된다고 치자. 나중에 내 방에 옷걸이를 전부 훔쳐간 도둑년이 말할 대사는 아닌 것 같다.  마지막으로는 서로 대화할 때 뭔가 이야기가 잘 안될 때, 내가 소통을 계속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그냥 포기하는 태도에 실망했다고 했다. 

몇 가지는 이해가 안됬지만 내 인생의 성장을 위해 사과를 하고 나도 내 미안한 감정과 서운했던 것을 말하고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런데, 그녀가 한 두번째 망언이 나의 하늘을 노랗게 했다. 다시 파티장에 들어가려고 하자, 그녀가 말했다. 

"나는 니가 일본어도 못하면서 이 파티에 같이 있는 것이 불편해, 나는 지금 너를 챙길 마음의 여유가 없어."

내가 언제 너한테 챙겨달라고 했니? 어디서 마음의 아량이 바다같이 넓은 척이야. 무엇보다 그 앞문장에서 무너졌다. 이게 나한테 할말은 아니지? 내가 물론 마루짱을 좋아해서 일본어를 공부하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일본어를 공부하면서 여자친구의 나라와 일본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 노력을 간젠니 무시당했다. 그 멍청하고 배려없는 것을 이해하려고 애썼던 내가 병신처럼 느껴졌다. 그때 완전히 마음이 정리되었다. 그래 널 내보내겠다. 마음먹었다. 그리고 나는 말했다.

​"지금부터 영어로 이야기하자, 그리고 난 돌아간다."

이삿날, 이후로 그녀가 집에 돌아오는 시간은 보통 오후 10시였다. 일은 보통 7시에 끝났다. 어딘가에서 술을 먹고 들어왔다. 이런 알콜중독자와 사는 것도 꽤나 피곤했다. 매일 술을 조금이든 많든 먹었다. 둘째 주까지는 저녁 10시-12시 사이에 들어왔다. 그런데 점점 들어오는 시간이 늦어지더니, 이젠 다음날 아침 7시에 들어온다. 각방을 쓰고 있어도 사람이 안 들어오면 걱정이 되잖아. 그래서 메시지를 보냈는데, 누구랑 있었을까? 그 T이라는 놈의 집에 있었다. 쉐어하우스이고 나도 가본 집이라 크게 걱정은 안했는데, 그때의 염려는 현실이 되었다. 그렇게 들어오는 시간은 밤12시에서 익일 오후 3시, 4시 마지막에는 아침 7시에 출근하기 전에 씻으러 집으로 돌아왔다. 그쯤 되니 그냥 해탈의 경지에 이른다. 

집에서 나가주기로 한 이후로는 아예 안들어오는 날이 많았다. 소문으로는 퇴사한 직원의 집에서 같이 지낸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어쨌든 짐과 미용도구는 전부 내 방에 있었다.  그 꼬라지를 보고 있자니, 별로 말도 섞고 싶지 않았다. 얘네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인사는 하자는 주의인가보다. 분명 사이가 엄청 안좋은 상태인데, 출근할 때 그리고 돌아왔을 때 인사는 꼭 했다. 그게 너무  싫었다. 그냥 말도 섞고 싶지 않았고, 그냥 그 킨바츠머리와 함께 내 집에서 좀 꺼져주었으면 했다. 제바알.

 

5.

사랑한다면서 속삭이던 사람들이 서로 상처만 주고 결국은 원래 본인이 있던 자리로 돌아왔다. 사귈 때는 내가 고백을 했지만, 끝났을 때에는 우리는 헤어지자고 하지 않았다. 우리 둘다 끝났다고 서로 알았다. 정작 헤어졌다는 이야기는 회사의 일본인 친구들에게서 들었다. 마루짱이 우리가 헤어졌다고 나불댔단다. 그냥 이름만 들어도 화가 났던 때라 참 뭐라 할 수 없는 감정을 느겼다.

나의 체중은 13kg 줄었었다. 그나마 그녀를 내보내기로 결정한 후에는 조금 나아지고 있었다. 이 동거를 통해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나는 좋아하고 같이 살면 다 좋을 줄 알았다. 애초에 대상도 조금 마니아틱한 상대를 고른 것은 내 잘못이지만, 앞으로 어떤 사람들을 만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나에게 이번 동거는 정말 좋은 경험이 되었다. 결혼과 연애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 버린 계기가 되었다. 정말 누군가와 함께 사는 것이 쉽지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함께 사는 대상이 숨만 쉬어도 싫어질 경우는 그건 지옥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

첫번째는 지옥이었고, 두번째는 천국이었다. 무슨말이냐면, 이 글의 제목이 무엇인지 기억하라. 첫 번째 일본 여자친구라고 되어 있다는 것은 두 번째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첫 번째는 정말 하드코어였고, 두 번째는 정말 천사를 만나서 그녀와 함께 있는 순간들은 매 순간이 소중하고 간직하고 싶었던 시간이었다. 두 번째는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이야기하자.

마루짱과 살면서 그녀가 토라진 상태로 그녀를 맞이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녀는 함께 잘 때에도 등을 돌리고 잠을 잤다. 이게 드라마에서 보면 저게 왜 섭섭하지 싶었는데, 막상 내가 같이 사는 사람의 등을 보고 잠드니, 많은 생각이 든다. 이 등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면서 잠을 들었어야 했을까? 나중에 결혼을 하게 되면 내 훈남 얼굴을 늘 배우자에게 보여주면서 잠드리라 다짐했다.​

마침 그녀가 나가는 날 나는 우연히도 한국에 잠시 다녀오는 비행기를 예약했었다. 그래서 그녀가 나가는 것을 못 보게 되었다. 나는 한국으로 잠시 몸을 옮겼고, 내 방의 키를 내 친구 하루짱에게 받아달라고 부탁한다. 정작 받아야 하는 날보다 이틀 뒤에 키를 받았다고 연락을 받았다. 내가 한국을 떠나기 전에 내가 한국을 가니 내가 한국 가있는 동안 내 방에 있겠다는 연락을 받는다. 방은 계약했으나 아직 공사중이라 있을 곳이 없단다. 뭔 이 미친 개소리야? 니가 있을 곳이 없는 거랑 내 집에 있겠다는 거랑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데. 이기심 끝판왕이 막상 자기 곤란할 때에는 세상사람들이 다 착한 줄 아네. 한번 조질까 하다가, 더는 마주치고 싶지 않아서 그냥 키를 받은 것으로 만족하기로 한다.

한국에서 돌아왔다. 그녀의 많던 옷가지와 짐은 사라졌다. 그리고 또 사라진 것들은 옷걸이었다. 옷걸이를 하나도 빠짐없이 가져갔다. 진짜 당황했다. 천사소녀 네티인가요? 무슨 뭐 훔쳐갈 게 없어서 옷걸이를 훔쳐가니? 이 도둑녀인아. 진짜 마지막까지 넌덜머리가 났다. 옷걸이는 쓸어가고, 그녀의 머리카락만이 남았다. 하수구에 막힌 머리카락과 대청소를 수만 번 하고나서야 사라진 그녀의 흔적들. 나갈 때도 정리를 하나도 하지 않고 나갔다는 것이 나를 더 충격에 빠트렸다. 대빡침

내가 흔히 말하는 갓스시녀와 만나서 얻은 것은 무엇일까? 이때부터 머리가 빠진  것 같다.  임시적 탈모 현상, 스트레스로 빠진 살로 인해 외모 전성기, 스트레스, 혼자 비싼 월세를 내야하는 방, 일본여자와 사귀어 보았다는 영광스런 타이틀  이 정도를 얻게 된다. 과거는 되돌릴 수 없기에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모든 경험은 가치있다. 이 경험은 영원히 회자될 것이다.​

아, 이야기의 결말을 얘기를 안했다. 그 마루짱은 T라는 내 친구와 눈이 맞아서 사귄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아마도 같이 살 때 새벽 4시에 들어올 때부터가 아닌가 생각한다. 솔직히 그때 마음이 떴기 때문에 내가 그때 그녀가 나에 대한 의리를 지켰는지에 대한 부분은 문제를 삼고 싶지도 않고, 별로 신경쓰지도 않는다. 그런데, 그냥 기분이 아주 좋지는 않다. 특히 친구랑 사궜던 여자랑 바로 사귀는 그 T라는 붕신도 도대체 뭐하는 色히인지 참 장래가 낙관적이다. 둘이 제발 결혼하고 잘 먹고 잘 살기를 기원한다. 하지만 헤어졌다.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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